중국#39 - 인산인해를 제대로 보여준 천안문광장
엄청난 차량의 물결속을 헤쳐나간 버스는..
드디어 천안문 광장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말 입이 딱 벌어집니다~
천안문 광장이 너무 커서가 아니고..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때문입니다.
중국의 인구가 많아도 땅도 넓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아예 바뀌었습니다. ㅎㅎ
더욱이.. 정말로 찐득찐득거리는 날씨..
매우 흐려서 햇빛 하나 없지만.. 날씨는 그야말로 고온다습입니다.
엄청난 인파..
이들은 지금 줄을 서서 어딘가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뿌디디한 날씨..
그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곳은 모택동(毛澤東 : 마오쩌둥) 기념관입니다~
썩지 않도록 처리하여 유리관에 뉘여져 있는 모택동 시신을 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단 1초도 머무를 수 없고..
그냥.. 그 시체가 있는 유리관을 지나갈 수 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줄을 서서 이렇게 기다립니다~
지그재그 지그재그..
우리에게 모택동은 그저 중국을 공산화시킨 정치가일뿐이고..
어떻게보면.. 한국동란 때 UN군의 도움으로 압록강까지 다다라 통일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중공군을 파견함으로서 우리의 통일을 방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뇌리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청나라 황제로부터.. 외세로부터 중국을 구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도입한 모택동은 일제와의 싸움에서 장개석과의 연합에서 실리를 취하고..
결국 1949년 장개석을 대만으로 축출한 뒤 중국을 완전히 공산화시켰습니다.
1949년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 1950년 임시 국가수반을 거쳐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초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을 지냈습니다.
1959년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임 주석으로 오른 류사오치가 마음에 안 들자.. 실각시키는 등 사망직전까지 실권자로 있었습니다.
모택동은 분명 중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지만..
대약진 운동으로 2천 5백만명이 죽고.. 문화대혁명으로 3천만명이 죽고.. 기아로 3천5백만명이 죽는 등 모택동 당시 중국은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모택동기념관 방문을 일생의 소원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o-
사람들 구경 그만하고.. 자금성쪽으로 갑니다.
멀리.. 모택동 초상화가 보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은.. 인민대회당으로 쉽게 말하면 우리의 국회의사당입니다.
정말.. 사람 많습니다.
천안문광장은.. 어떤 분들에게는 - 저도 그렇습니다. - 1989년 6.4에 있었던 천안문사태를 기억하시겠지요.
중국이 그 때 민주화되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국가박물관.. 즉 국립박물관입니다.
그 사이에 조금 가까워진 천안문..
그런데.. 사람들이 더 가까이 가지를 않네요~
요렇게.. 천안문 과장 정명은 출입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쭉~ 당겨봅니다.
자.. 자금성으로 가려면 길을 건너야합니다.
자금성은 어떤 곳일런지..
천안문 광장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자.. 그럼 자금성으로~
ps. 제가 캐나다에 있어서 이웃님들 방문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ps. 혹시 추천하셨다면.. 이왕이면 댓글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