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나는 가끔 중국 음식 뷔페인 만다린에 간다. 25.99달러짜리 평일 뷔페. 택스와 팁이 붙긴 하지만 한식당 갈비탕 한 그릇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재미있는 건 내가 거기서 중국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샐러드를 잔뜩 쌓고, 스테이크를 몇 번이고 가져다 먹은 뒤 배를 두드리며 나온다. 옆 테이블의 서양 가족은 빵과 과자, 과일만 한가득 먹다가 일어선다. 우리 모두 만다린이라는 한 공간에서 식사했지만, 무엇을 골라 먹었느냐는 각자의 몫이었다.
교회도 원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오더라도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전통 신학의 언어가 익숙한 사람은 그것으로, 과학적 사고로 세계를 이해하는 사는 사람은 그 언어로, 예술적 감각으로 신앙을 느끼는 사람은 또 그렇게 말이다.
만다린에 와서 배를 채웠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떤 메뉴를 접시에 담았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물론 만다린이 음식점의 본분을 잊고 옷이나 장난감을 팔아서는 안 되듯, 교회 역시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본질을 전달하는 언어와 방식은 뷔페의 메뉴처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스테이크 역시 엄연한 음식인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만다린은 오직 중국 전통 음식점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데 있다. 누군가 스테이크를 가져다 놓으려 하면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완고한 반응이 순수한 신앙적 확신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평생 중국 음식 셰프로 훈련받아온 이들에게 스테이크 셰프의 등장은 단순한 메뉴 확장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교계를 분석하는 기사들은 연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쏟아낸다. 과도한 헌신 요구, 경직된 소통 구조, 혹은 목회자의 도덕적 실망 같은 것들이다. 실제로 청년들이 모이는 SNS 공간을 들여다보면 권위주의적인 대화 방식이나 위선적인 문화에 상처받았다는 날 선 고백들이 가득하다. 기성 교단은 이러한 통계를 들여다보며 청년부실에 커피머신을 들여놓거나 찬양 집회를 더 세련되게 꾸미는 식의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이것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뻔한 '객관식 지문' 안에서의 분석일 뿐이다. 정작 청년들이 겪는 가장 본질적인 갈증은 그 지문 어디에도 없다. 현대의 고등 교육을 받으며 자란 청년들은 학교에서 우주의 나이와 진화론, 생물학을 배운다. 그리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에덴동산의 뱀이 말한 사건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만 참된 크리스천"이라는 무지성적인 요구와 마주한다. 합리적인 이성과 신앙 사이에서 청년들이 겪는 치열한 인지부조화와 지적 피로감은 교계의 조사 항목에서 아예 누락되어 있다.
결국 청년들은 기독교를 현대 과학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이나 '원시 샤머니즘'으로 취급하며 조용히 문을 나선다. 기성 교회가 성경을 문자주의라는 좁은 틀에 가두고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는 한, 청년들에게 교회는 소통이 안 되는 고집불통의 공간일 뿐이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니다. 교회라는 만다린이 오직 중국 음식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싶은데 접시에 담을 수 있는 메뉴가 너무나 좁고, 그 좁음이 교회라는 거대한 구조로 단단하게 굳어 버렸다.
하나님을 바라는 청년들의 이성은 지금 넓고 깊은 신학의 언어를 갈망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도구를 품어낼 수 있을 만큼 넓은 뷔페가 차려지지 않는다면, 청년들의 발길을 돌릴 방법은 없다.
오늘도 나는 만다린에서 스테이크를 아주 잘 먹고 나오며, 이 넓은 식탁이 교회에는 왜 허락되지 않는지 씁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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