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에서의 삶

신앙/신앙 사색

남녀 성비 44:56의 미스터리와 성령의 열매

캐나다 제이슨 2026. 4. 27. 11:03

남녀 성비 44:56의 미스터리와 성령의 열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자기 인식의 감옥 안에 가두려 한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라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하나님을 고작 내 문제와 체급이나 겨루는 '헤비급 챔피언'으로 격하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식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분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메커니즘을 다 이해한다면 이미 그와 동급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장 정직한 신학적 대답은 정의할 수 없음, 즉 '모름'이다.

 

그러나 이 불가지론의 절벽 끝에서도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본질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 예수님을 통한 구원, 그리고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그 열매. 그 외의 것들은 사실상 해석 차이의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좁은 머릿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기에, 우리는 본질을 사수하되 그 본질이 발현되는 방식의 무한함은 인정해야만 한다.

 

신학은 블랙박스 안에 숨어 침묵하지만, 공학자는 출력값을 본다. 하나님이 불가지한 분이라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는 결국 삶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뿐이다. 누군가는 이순신 장군이 예수를 몰랐으니 지옥에 갔을 거라 단정한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그런 무서운 확신을 하는가? 성경은 만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어 핑계치 못한다고 기록했다. 장군의 삶에서 나타난 충성, 인내, 자기희생이라는 열매는 성령이라는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고서는 산출될 수 없는 고해상도 출력값이다. 입자가 작아도 가속도가 크면 거대한 중력을 형성하듯, 그의 영혼이 낸 거대한 가속도는 그 자체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증명하는 강력한 물리적 증거다.

 

열매가 맺혔다는 것은 그 안에 성령이라는 '소스(Source)'가 현존한다는 증거다. 이는 결코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의 증거가 곧 행함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는 교회 울타리 안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뼈아픈 역질문을 던진다. "지금 교회는 그 열매를 제대로 맺고 있는가?"

 

교회 내 성비와 전공의 불균형을 보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통계적으로 이공계 소양을 가진 인구는 절반에 육박하는데, 왜 교회 안에서는 그들이 이토록 희귀한가. 44:56이라는 비대칭적인 성비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열매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교회가 현재 무언가 잘못된 신호를 송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들과 이공계인들의 논리 회로에 척력을 일으키는 메시지만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관점을 적용하면 교회 밖에도 구원받은 '익명의 알곡'이 가득하고, 교회 안에는 단지 자리만 채우고 있는 '감정적 가라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서늘한 결론에 도달한다. 기회의 균등이 아니라 결과값의 균등이 하나님의 공평이라면, 사라진 이공계 알곡들은 지금 교회 밖 광야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연산하고 있을 것이다.

 

신앙이란 결국 내 인식의 한계를 10에서 100으로, 다시 1000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학문이 깊어질수록 경탄의 문턱은 높아지고, 베스도가 바울에게 그랬듯 세상은 우리를 향해 "미쳤도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미침'의 방향이 하나님을 내 좁은 감옥에서 풀어드리고 그분을 더 크게 보는 쪽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비난을 감수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좁은 기준 안에 가두어 구원을 판정하는 교만을 멈춰야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구원의 유일한 증거는 내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내 삶이라는 필드(Field)에 새겨진 성령의 열매다. 그 열매라는 데이터가 보존되는 한, 육체라는 하드웨어가 사라져도 우리 인생의 진동은 우주적 메모리에 영구히 기록될 것이다.

 

이런 말을 꺼내면 목사님들이 불편해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어느 날, 목사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 다른 교회를 추천해 주실지라도, 나는 오늘도 그 '정의할 수 없는 분' 앞에서 겸손히 내 삶의 아웃풋을 체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