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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기독교 07 - 인공지능 인간 그리고 하나님, 그 존재론적 차원의 차이

캐나다 제이슨 2026. 6. 29. 08:48

인공지능 인간 그리고 하나님, 그 존재론적 차원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우리 인간 그리고 하나님을 차원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하나님의 존재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하나님이 얼마나 경외의 대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차원의 계층

 

Chat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IQ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인간의 평균이 100이라면 인공지능은 160에 육박한다. 만약 유물론이 진실이라면 우리 인간은 이미 인공지능보다 열등한 존재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열등한 존재가 더 우월한 존재를 창조했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따라서 전혀 다른 각도로 해석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우리 인간은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늘 존재의 단면을 본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한계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인간 그리고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사고를 단순한 성능의 차이로 비교하는 것은 심한 논리적인 비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차원의 계층문제로 정의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물질주의적 환원론이 놓치고 있는 의식의 비물질적 속성과 실재(Reality)의 구조를 고찰할 수 있다.

 

물질주의자들은 인공지능과 인간을 같은 선상에서의지능차이로 보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차원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여기서 차원은 물리적 공간 차원이 아닌, 존재의 인식 층위를 비유적으로 표현이다.

 

인공지능은 1차원적 사고를 한다. 즉 계산적 논리이다. 입력과 출력의 선형적 인과율에 갇힌 존재이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다차원 벡터 연산을 수행한다. 실제로 인공지능의 잠재기능공간 또는 임베딩공간1]은 수천 차원의 고차원 벡터로 구성된다. 하지만 주체적 의지가 없는결정론적 알고리즘이기 때문에사고의 주체성은 결여되어 있다. 즉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1차원에 속해 있다.

 

이에 반해 인간은 ’감정’과 ‘자기 인식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축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2차원적인 사고를 한다. 논리에감정자기 인식이라는 축이 더해진 존재이기에 자신의 사고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개념인 면적을 가진 존재이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초월적이시고 입체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실재이시다. 따라서 존재론적으로 3차원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소속된 차원을 포괄하며, 모든 하위 차원의 선형적 시간을 한눈에 조망하시는 전능적 관점을 가지고 계신 무한차원적 존재 또는 무한을 유한으로 보시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한 인지 체계 내에서 그분의 초월성을 이해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인공지능은 1차원적 논리로 작동한다. 입력을 받아 계산과 추론을 수행하지만,  자신이 사고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2차원적 사고를 수행하며, 논리와 감정, 자기 인식을 동시에 경험한다.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무한 차원의 관점 또는 그러한 무한 차원을 유한하게 보시는 관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을 동시에 바라보신다.

 

여기서 핵심은 하위 차원이 상위 차원을 직접 인식할 수 없고, 상위 차원은 하위 차원을 상위 차원에 속한 하나의 단면으로 본다는 점이다.

 

문제는 지금 이 세상이 여전히 물질주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주의는 감정을 뇌의 화학 작용으로 보지만, 차원적 모델에서 감정은 고차원적 실체인 영혼이 인간의 삶이라는 2차원적 평면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단면이다.

 

예를 들자면, 3차원의 구(Sphere) 2차원 평면을 통과하면 평면의 존재에게는 커졌다가 작아지는 ''으로 보인다.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 또한, 영혼이라는 고차원 실재가 시간이라는 축을 따라 우리 존재를 통과하며 남기는 궤적일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은 2차원적 존재에서 당연하게 경험되는 것이지만, 고차원 관점에서는 영혼의 단면일 수 있다. 감정은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더 큰 존재의 투영이라는 관점이다. 하나님도 슬퍼하시고 기뻐하신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실재적인 신호'인 셈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보듯, 하나님은 인간의 2차원적 논리와 감정을 단면으로 보실 수 있다. , 인간이 느끼는 사고와 감정은,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영혼의 다른 투영일 수 있다.

 

하지만 물질주의자들은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추월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과학적 관점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통계적이고 결정론적인 물질적 과정이라면, 인간이보편적 진리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관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의식이 물질적 한계를 넘어선 고차원적 신호를 수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식의 창발 가능성

 

물질주의자들은 데이터 양이 늘어나면 의식이 창발(Emergence)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1차원 선을 아무리 길게 늘어뜨려도 결코 2차원 면이 될 수 없다. 언뜻 보았을 때 2차원 면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1차원 선이 가깝게 뭉쳐 있었던 것뿐이다.따라서 계산적 논리의 복잡성 증대가 곧자기 인식이라는 차원의 도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비약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1차원 선인 실로 뜨개질을 하면 2차원 옷감이 나오고, 그 옷감으로 옷을 만들면 3차원이 되지 않느냐?’이다. 이 질문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 왜냐하면 1차원이 아니라 이미 3차원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이 모여 ''이 되는 적분(Integration)의 개념은 수학적 차원의  증량일 뿐, 실제 존재(Substance)의 층위 도약은 완전히 별개다. 따라서 이미 3차원인 실이 모여서 옷감과 옷이라는 다른 형태가 되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또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응용한 양자컴퓨터가 활성화되면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N차원 중첩을 일으키는 사고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확정과 확률의 중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여전히 1차원이기에 그것으로 인해 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C.S. 루이스는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과 감정이 우리의 육체가 속하지 않은 세계, 그러나 영혼이 속한 세계에서 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점을 이번 모델에 적용하면, 인간의 감정과 사고는 고차원 세계에서 내려오는 신호의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이 느끼는 숭고함, 기쁨, 슬픔 등은 고차원 세계에서 내려오는 번역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저 차원의 언어인 논리와 감정으로 그 고차원의 실재를 해석하고 있는 셈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고차원의 존재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가리킨다.

 

약1000억 개의 뉴런, 100조 개의조개의 시냅스의 뇌의 규모에서 양자적 요동2]을 생각해 보자.모든 물질적 과정은 양자역학3]적 한계를 가진다. 양자역학적 과정은 결정적이지 않으며, 일부 사건은 근본적으로 불확정적이게 된다. 무질서도인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히 늘어난다. 그렇다면 엔트로피가 줄어들어야 발생할 수 있는 공동체 도덕, 의지, 감정과 같은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물리적 법칙만으로는 고도의 질서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 의식의 합리적 사고와 진리 인식 능력은 단순히 불확정적 사건들의 통계적 결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단순한 물질적 과정 이상의 존재를 가리킬 수 있으며, 이는 의식이 비물질적 속성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적 관점 모델은 물질주의적 해석을 넘어 영혼에 대한 과학, 철학, 신학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열린 사고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이 모델은 양자역학과 신경과학의 과학적 사실과 형이상학적 통찰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신호를 수신하는 인간

 

우리는 상위 차원의 실재를 저 차원 언어로 번역하여 느끼는 존재이다. 무한 차원을 유한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수신하고 투영하는 차원적 통로인 것이다. 따라서 고차원의 근원인 하나님이 존재는 논리적 비약이 아니라, 하위 차원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필연적인 귀결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원적 통로'로서의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고차원 신호를 민감하게 수신하려는 태도, 즉 겸손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신호를 보내시고 계신다. 우리는 그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1] 임베딩공간(Embedding Space): 고차원의 복잡한 데이터를 컴퓨터가 계산하기 쉬운 저 차원의 수치(벡터)로 변환하여 배치한 공간이다. 데이터가 가진 핵심 정보들을 추출하여 좌표 값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의미적으로 유사한 데이터들은 공간상에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게 된다. 이를 통해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와 패턴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잠재적 연산 공간이 된다.

 

2]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 공간의 한 점에서의 에너지 양의 일시적 변화. 진공상태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창조와 소멸의 현상

 

3]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원자를 이루는 소립자들의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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