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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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기독교 08 -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캐나다 제이슨 2026. 7. 1. 08:46

인공지능 시대,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류의 거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역시 이 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목회자들은 더 이상 권위를 '신학적 정보의 양'에서 찾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인간 신학자가 평생에 걸쳐 연구할 분량을 인공지능은 단 며칠 만에 결과를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들의 신학적 지식이 비약적으로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의 신학적 지식 증가가 가져올 파장

 

예를 들어보자. 창세기 해석에 대하여 평신도들이 인공지능에 묻기 시작하면, 인공지능은 교단의 전통, 인간의 확신과 의지 등에 묶이지 않고, 방대한 자료를 종합하여 더욱 설득성 높은 해석 패턴을 제시할 것이다. 이 결과 평신도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될 것이다.

 

왜 우리 교회는 과학과 충돌하는 창세기 해석을 고수할까?”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은 24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아닌가?”

궁창을 뜻하는 라키아는 고대 근동의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는 우리 교회의 창세기에 대한 해석이 틀렸을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신도들의 신학적 지식 증가가 평신도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교회 전체로는 오히려 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스스로 신학적 해석의 발전적 개혁을 하지 못할 경우, 많은 성도들이,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인공지능은 교회를 공격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해석적 한계를 폭로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전통적 해석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많은 교회가 현대 과학과 이성적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닫힌 해석'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이 결과 목회자의 영적 권위가 흔들리기 쉬워지고, 평신도들은 목회자의 양육을 굳이 받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더욱 쉽게 인공지능을 통해 그 해법들을 찾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목회자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단기적으로는 목회자들에게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하지만 지식 전달의 독점권은 사라질지라도 인격적 동행의 가치는 더욱 귀해질 것이다.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인공지능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는 토양이 될 수 있다. 교회가 교회의 순수한 목적을 잃어서 이념 편향적이거나, 정치적일 경우, 오히려 이를 본질로 돌려놓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즉 성경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사도행전 17 11절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과 같은 성도들이 많아질 수 있다. 이는 오히려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통해 전통적 교리라는 가치관에 묶여 있던 중세 암흑기의 교회로부터 탈출하여 본질로 돌아갔던 것과 유사한 변화를 이끌어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증기기관이나 컴퓨터를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허락하신 것처럼 인공지능도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인공지능 역시 목회를 보조하는 도구로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에서 사무를 맡기고, 건물 관리, 청소, 주방 등은 로봇에게 맡기면 목회자는 더욱 더 영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라틴어로만 되어 있던 성경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면서 평신도들의 성경 접근성을 높이고 이것이 신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된 것처럼, 인공지능을 통해서도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신학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인공지능이 정보 처리에서 우월할 수 있지만, 신학은 단순한 정보 종합이 아니라 영적 통찰과 공동체적 검증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들이 계속되면, 결국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영적인 것들에 집중하려 할 것이고, 오히려 이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성도들의 영적 갈증을 오히려 폭증 시킬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의 역할은 신학적 지식의 전수자가 아니라, 영적인 안내자여야 한다. 그 갈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로만 해결 될 수 있음을 잘 알려주어야 한다.1]

 

성도들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신학적 지식을 늘려가는데 만족하지 않고, 사색과 묵상을 통해서 더욱 깊이 하나님 말씀 앞으로 다가갈 수 방향으로 안내해야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성도들이 지정의로 더욱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한다.

주일 학교의 경우, 설교 시간보다는 분반 공부 시간을 늘려야하고, 주일 학교 교사들은 영적 선배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가 되어서 자녀들이 토의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 목회자의 권위는지식 전수자가 아니라영적 리더라는 기반 위에서 더욱 확고해져야한다. 결국 교회가 궁극적으로 붙들어야 할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본질의 사수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영적 동행과 인격적 사랑이어야만 한다. 그만큼 순모임과 같은 공동체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성도들은 똑똑한 목사님을 원하지 않는다. 성도들은 존경할 수 있는 목사님을 원한다. 그리고 그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도 원하시는 바임이 분명하다.

 

1] 토론토 밀알 교회 순장 교육에서 발췌하여 저자의 언어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