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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기독교 09 -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면서

캐나다 제이슨 2026. 7. 3. 10:37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저자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대중 음악을 무조건 싫어하지는 않는다. 대중 음악 중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곡은 많다. 하지만, 굳이 찾아서 듣지는 않는다. 또한 신앙인이기에 예배 시간이 아니더라도 가스펠과 찬송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듣는다. 노래를 잘 못하기 때문에, 나지막히 따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곡 중에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미완성 교향곡이 있다. 이 교향곡은 슈베르트의 사후에 발견되었는데, 2악장까지만 완성되어 있고, 3악장은 몇 개의 마디만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운명 교향곡, 차이코프스키(Pyotr Tchaikovsky)의 비창 교향곡등과 함께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로 분류된다.

 

3악장과 4악장

 

많은 작곡가들이 이 곡의 3악장과 4악장을 썼지만, 그 어느 작품도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91월 중국의 화웨이(Huawei)는 자사의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기능을 홍보하기 위해 실시한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다. '메이트 20 프로'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슈베르트의 기존 곡들의 음색, 피치, 박자를 학습했고, 특히 1악장과 2악장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그 흐름에 어울리는 3악장과 4악장의 멜로디를 생성해냈다. 이 멜로디를, 에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작곡가 루카스 칸토르(Lucas Cantor)가 오케스트라로 편곡 해서 최종 악보를 완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9 2 4, 런던 카도간 홀(Cadogan Hall)에서 1악장부터 4악장 전체가 실제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됨으로써 마감되었다.

 

만약에 지금의 인공지능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3악장과 4악장을 마저 완성한다면 어떻게 할까? 인공지능은 슈베르트의 생애, 화성 전개, 심지어 그가 즐겨 쓰던 파격적인 전조까지 데이터화하여 학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일 것이다. 마치 슈베르트가 다시 태어나서 3악장과 4악장을 완성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릴 확률이 높다.

 

여기서 하나 고민할 것이 있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학습을 통해서 결과를 도출하는 능력을 ‘1’이라고 정의하자.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2’라고 정의하자. 이 경우, 문제는 분명 1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마치 2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3악장과 4악장의 연주를 들으면서 감동한다. 도저히 영혼이 없는 인공지능이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수 많은 1이 모여서 2라는 형태로 보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진짜 2인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만 2인지 점점 더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토벤의 영웅(Eroica) 교향곡 1악장 전개부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불협화음, E-flat 조성에서 부딪히는 거친 화음들이 있다. 베토벤은 이 마디를 고의적으로 넣었을 것이다. 이 마디는 마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이것마저 학습하여 상상하기도 힘든 곡을 써낼 때이다. 마치 조용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멜로디가 끝나자마자 스트라빈스키(Stravinsky)봄의 제전과도 같은 긴장감이 흐르게 한다. 마치 긴 창작의 고통을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순식간에 창작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일부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의식과 영혼을 뇌작용의 산물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영역이며, 많은 철학적 논쟁이 남아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는 무신론자들이 전혀 틀린 답을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혼 그리고 영

 

의식에 대해서 쉽게 설명할 필요성이 있기에 고민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설명을 단순화하기 위해 인간의 구성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보자. = 1, = 2, = 3 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숫자적 구분은 신학적으로 인간의 구성 요소의 개수가 실제로도 이렇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론적 인식의 층위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적 설정일 뿐이다.

 

인간은 1, 2 그리고 3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생물은 1 또는 1 2의 조합일 수 있다. 이에 반해 인공지능은 2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의 조합이다. 단 그 조합이 너무 막강해서 2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이 2처럼 보이는 인공지능의 결과가 진짜 2인지, 2처럼 보이는 1의 조합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이 결국 0 1이라는 이진법적 파편들이 무한히 촘촘하게 배열된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인식은 이 미세한 간극을 읽어낼 만큼 분해능이 정밀하지 않다.

 

그래서 쉽게 인공지능이 만든 '무한한 1의 모임'을 보고 마치 생명력이 깃든 진정한 2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것이 마치 인간의 의지와, 희로애락의 주관적 경험과 거의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3이라는 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 4는 뭐고 5는 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인간의 수리적 인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역중 일부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명료하다. 아무리 숫자가 무한으로 증가해도 하나님은 그 무한을 유한으로 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런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고 감격스럽다.

 

인공지능이라는 신형 버스

 

이제 인류 앞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신형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해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적 해석과 전통적 권위라는 익숙한 정거장에 머물며, 이 신형 버스는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주지 못할 것이라 외면한 채, 오지 않는 옛날 버스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신형 버스가 정거장을 떠나기 전에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탄 버스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버스는, 진리라는 목적지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하게 해줄 도구가 될 수 있다.

 

과거에 걸어서 하루가 걸리던 길을 이제 새 버스를 타고 1시간 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수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시간은 단축되었다. 인공지능이 지식의 탐색 시간을 줄여주었다면,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더 깊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 실천을 해야한다. 즉 인공지능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진정한 2 3을 가진 삶을 살아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완결로 나아가는 해석

 

성경은 무오하고 성경의 정경성은 확립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무오한 것이지 해석 자체가 확정되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 진리의 깊이를 더 깨달으려고 노력하고 또 삶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슈베르트의 곡이 '미완성'이었기에 오히려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위대해졌듯, 우리의 신학도 '완결된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이로우심과 전지전능하심을 향한 '완결로 나아가는 해석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은 고백과 실천을 통해 매일 새롭게 써내려가는 현재진행형의 교향곡이다. 과학과 인공지능을 도구로 잘 활용하는 변화 발전된 신학은 미완성된 우리의 삶을 더욱 더 멋지게 완성해가도록 돕는 이 시대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