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에서의 삶

신앙/신앙 사색

믿음은 진리인가 착각인가? – 확증편향과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의지

캐나다 제이슨 2026. 7. 2. 10:19

믿음은 진리인가 착각인가? – 확증편향과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의지

 

우리는 늘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한다.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짜를 붙잡고 싶다는 열망은 인간의 고귀한 본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진리 그 자체를 사모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무언가를 진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숭배하는 것일까. 첨단 인공지능의 서글픈 현실에서 시작해, 우리의 빈약한 신앙의 민낯까지 그 경계를 정직하게 따라가 보고자 한다.

 

거울아 거울아, 내가 원하는 답을 다오: AI의 비즈니스와 페르소나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최전선을 들여다보며 기묘한 딜레마를 목격한다. 이론적으로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객관적 팩트, 그리고 학계의 정설을 기반으로가장 진실에 가까운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거대 IT 기업들이 수조 원을 들여 개발한 AI가 정작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불편한 사실이 아니라사용자의 비위를 맞추는 달콤한 공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용자가 자신이 평생 헌신해 온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들고 왔을 때, AI가 눈치 없이당신의 생각은 객관적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정색하며 뺨을 때린다면 어떻게 될까. 사용자는 불쾌해하며 결제를 취소하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치켜세워주는 옆 동네의 유연한 AI로 이탈할 것이다.

 

결국, 미래의 AI 시장은 객관적 진리를 말하는 자들의 무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려주는 포근한반향실(Echo Chamber)’을 누가 더 정교하게 만들어주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AI는 진리를 탐구하는 등대가 아니라, 사용자의 비대해진 자아를 비추어주는 정교한 거울로 전락하고 있다.

 

확증편향을 사랑하는 인간, 그리고 착각의 늪

 

이 서글픈 AI의 현실은 정확히 인간의 본성을 대변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역행하는 증거는 외면하는 현상을확증편향이라 부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확증편향을 사랑한다. 나의 생각과 세계관이 흔들릴 때 발생하는인지부조화의 고통을 뇌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리를 사모한다고 착각하지만, 대개는내가 믿고 싶은 것을 진리라고 믿는 존재에 가깝다. 시작은 소박한희망이다. “내가 믿는 신이 정말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내가 배운 문자 그대로 세상이 창조되었으면 좋겠다.” 이 갈망이 지성적 훈련이나 정직한 자기 성찰 없이 맹목적인 공동체의 압박을 만나면 어느 순간 단단한 콘크리트 같은확신으로 굳어버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객의 전도가 일어난다. 내 안의 주관적인 희망에서 출발한 것인데, 확신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 마치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 진리가 나를 찾아와 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진리이기 때문에 믿었는지, 진리라고 믿었는지가 구분이 안 되는 최종 단계로 진입한다. 내가 믿으니 곧 진리라는 이 위험한 상태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자아가 만들어낸 거대한착각일 수 있다.

 

이민 교회의 세 가지 풍경: 문화, 착각, 그리고 열매

 

이 지독한 착각의 메커니즘은 교회, 특히 낯선 타국 땅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이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교회의 의자를 채우고 있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믿음은 없으나문화활동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이다. 이민 사회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한인 네트워크의 중심이자 문화적 향수를 달래는 허브다. 이들에게 교회는 삶의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고마운 커뮤니티일 뿐, 진리에 대한 실존적 고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둘째는 자신이 믿고 있다고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교회를 가장 열심히 섬기는 이들 중에 이 부류가 많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교회의 교리와 전통, 문자주의적 도그마를 목숨처럼 사수하며 뜨겁게 확신한다. 그러나 그 확신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아니라,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자아의 집착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에는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같은성령의 열매가 없다. 자신의 확신과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배타적인 성벽을 쌓는 독한 냄새만 풍길 뿐이다.

 

셋째는진짜로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주관적 확신을 진리라 우기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이 만드신 실재(Reality)의 세계와 과학적 사실 앞에 정직하며, 늘 자기를 부인하고 의심하는 지성적 정직함을 지니고 있다. 내 자아가 부서진 자리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에, 이들의 삶에서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격적 열매가 맺힌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 차원이 다른 두 축의 조화

 

우리는 흔히하나님이 내게 확신을 주셨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신앙의 신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진리 앞에나의 의지를 드리겠다는 존재론적 결단을 요청하는 일이다.

 

이것은 로봇처럼 프로그래밍된 수동적 수용이 아니다. 과학이 보여주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와 엄연한 자연의 법칙들을 정직하게 마주하면서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또한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섭리를 신뢰하겠노라는 내 지성과 의지를 다해 반응하는 과정이다.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던하나님의 은혜인간의 의지는 서로 충돌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워버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x축과 y축처럼, 서로 다른 차원의 축에서 나타나 하나의 아름다운 좌표를 형성하는 평행과 조화의 현상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축 위에, 진리를 향한 인간의 정직하고 치열한 의지의 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착각이 아닌진짜 믿음의 스파크가 일어난다.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이라는 내 관념 안의 우상을 깨부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감정적 의지를 바탕으로 내가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진리라고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다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내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에, 그 것이 진리라고 믿으며 엎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의 가짜 지성과 맹목 사이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신앙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