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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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한 모든 것 - 알라와 하나님

캐나다 제이슨 2026. 7. 4. 10:40

알라와 하나님

 

캐나다로 이민 오고 나서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이슬람اسلام, Islam) 또는 회교(回敎)에 대한 진실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10분만 차를 몰고 가면 모스크가 하나 있다. 그 곳은 주로 파키스탄 출신 사람들이 모이는 모스크이다.

 

이슬람은 완전한 일신론(타우히드, Tawhid)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알라(Allah)'는 아랍어로 정관사 알(ال-)과 일반 명사 일라(إله, )가 결합하여 유일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축형 고유명사가 되었다. 즉 알라 = 하나님(The God)이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오랫동안 이슬람이 믿는 신의 이름이 알라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라신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전앞’이 되어 버린 셈이다. 심지어 아직도 이슬람은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마호멧을 신으로 믿는 종교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꽤 있다.

 

내 집의 옆옆집에도 무슬림(복종하는 사람) 노부부가 사는데, 사람들이 참 착하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결국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해서 공부를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메드(마호멧)

 

우리는 흔히 이슬람의 창시자를 마호멧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발음은 무함메드(مُحَمَّد)이다.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 부족인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문 자체는 명망이 있었지만 유년기는 지독히 불우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망했고, 6세 때 어머니마저 사별했다.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할아버지도 곧 돌아가시자, 숙부인 아부 탈립 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가난한 상인이었기에 무함마드는 어릴 때부터 거친 광야에서 양치기 일을 하며 생계를 도왔고, 숙부를 따라 시리아 등으로 원거리 무역 상인단을 따라다녔다.

 

그는 비록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으나, 상인으로서 성품이 지극히 정직하고 성실하여 메카 사람들로부터 '알 아민(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최고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무함마드가 25세가 되었을 때, 그의 정직함에 대한 소문을 들은 메카의 막강한 부유한 과부 상인 하디자(당시 40세로 추정)가 그를 고용해 시리아 무역을 맡겼다.

 

무함마드는 이 무역을 엄청난 성공으로 이끌었고, 그의 인품에 반한 하디자가 먼저 청혼을 하여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다. 이 결혼으로 무함마드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적 안정과 메카 사회에서의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디자는 단순한 아내를 넘어, 무함마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훗날 이슬람의 최초 신자가 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무함마드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메카는 무역으로 급격히 부를 축적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과거 유목민 시절에는 부족 내의 고아와 과부 같은 약자를 돌보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으나, 상업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오직 '개인의 이윤'만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사회로 변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메카의 카바 신전에는 온갖 부족의 우상( 360)을 유치하여 종교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고, 영아 살해(특히 여아), 도박, 음주가 만연했다.

 

정직하고 사색적이었던 무함마드는 자기가 속한 쿠라이시 부족 상류층의 이러한 탐욕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기복적인 우상숭배에 깊은 고뇌와 환멸을 느꼈다.

 

이러한 정신적 갈등이 깊어지면서, 무함마드는 매년 아랍 달력으로 9번째 달인 라마단 한 달 동안 메카의 번잡함을 피해 홀로 은둔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메카에서 약 4.8km 떨어진 자발 안 누르(빛의 산)에 있는 '히라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성인 한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아주 좁은 바위 틈새 같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무함마드는 이곳에 최소한의 빵과 물만 가지고 들어가 몇 날 며칠을 홀로 명상(타하누스)하며 "인간은 왜 이렇게 타락하는가", "우주의 참된 진리는 무엇인가"를 고뇌했다고 한다.

 

이슬람의 탄생 스토리

 

무함메드의 이 삶의 궤적이 반복되던 중,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서기 610년 라마단 달의 어느 날 밤(이슬람에서는 이 밤을 '권능의 밤'이라 부른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다.

 

히라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나타나 가장 먼저 외친 말은 "이끄라!(إِقْرَأْ, 읽어라/낭송하라!)"였다. 문맹이었던 무함마드가 "저는 읽을 줄 모릅니다"라고 하자, 가브리엘 천사는 세 번이나 그를 껴안으며 알라의 말씀을 외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قُرْآن)은 아랍어 어근인 '카라아(قَرَأَ, 읽다/낭송하다)'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 단어 자체의 뜻이 '낭송해야 할 것' 또는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꾸란은 처음부터 눈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귀로 듣고 입으로 읊는 '소리의 경전'으로 시작되었다. 가브리엘이 읊어준 목소리를 무함마드가 입으로 받아 읊었고, 제자들은 이를 그대로 암기해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9(라마단)에 첫 계시가 임했기 때문에, 훗날 이슬람 공동체는 이 9번째 달을 가장 성스러운 달로 지정하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라마단 금식'을 행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의 탄생 분석

 

이렇게 이슬람이 7세기 초(서기 610년경)에 탄생한 배경에는 아라비아반도의 상업 도시 메카의 상황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라비아반도는 통일된 국가 없이 부족 단위로 쪼개져 있었고, 수백 개의 우상을 숭배하는 다신교 사회였다.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은 이들 부족들의 우상을 모아놓은 중심지였다.

 

메카는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사이의 무역로가 차단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거대한 상업 도시였다. 무함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시(Quraysh)' 부족이 상권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반면, 고아, 과부, 노예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빈부격차는 극에 달해 있었다.

 

무함마드는 이러한 메카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불평등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 그는 메카 근교의 히라 동굴에서 명상하던 중, 서기 610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슬람은 삼위일체를 알라의 유일성(타우히드)을 해치는 중대한 죄(shirk, 신성모독)로 본다.

 

무함마드는 예언자들의 완성자이자 마지막 예언자이며,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랍어로 직접 계시된 것으로 번역본은 원문과 동등할 수 없다고 본다. 구원은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1)신앙 고백, 2)예배, 3)희사, 4)금식, 5)성지순례라는 다섯 기둥 수행 및 선행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꾸란은 우주와 생명의 창조를 하나님의 행위로 기술하지만, 창조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보다 훨씬 적은 세부사항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적 발견과의 충돌은 기독교 세계보다 적었다는 평가도 있다. 중세 이슬람 문명은 수학, 천문학, 의학 등 과학 전반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거부감이 크며, 특히 인간이 원숭이류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주장은 대다수 무슬림이 수용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특별 창조는 거의 보편적으로 고수된다.

 

이슬람에는 원죄 개념이 없다. 아담의 타락은 개인의 불순종이었으며, 그 죄책이 후손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피트라(선한 본성)'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율법(샤리아)은 신앙과 법이 분리되지 않는다. 식이 규정(할랄/하람), 이자 금지, 가족법, 형법 등 삶 전반을 포괄하는 율법 체계가 되어 있다.

 

꾸란이 주장하는 예수님

 

예수님(이사)은 동정녀 마리아(마르얌)에게서 태어난 위대한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존중하나, 신성은 없는 '알라의 말씀(Kalimatullah)'이자 '알라로부터 온 영(Ruhullah)'이라고 부르지만 분류상 인간이다.

 

꾸란은 예수님의 기적을 모두 인정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산 채로 승천'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조차 평범하게 늙어 죽어 메디나 땅에 묻혔는데, 예수님만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에 다시 내려와 사탄의 세력(거짓 메시아 다잘)을 처단하는 주인공이 무함마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꾸란에서 예수님의 다른 명칭이 알 마시흐(메시아)이다.

 

재림하신 예수님은 지상에서 약 40년 동안 머물며 지상 낙원을 이룩한다. 이때 예수님이 하는 핵심 행동들이 흥미롭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었다는 기독교의 주장을 부수고, 이슬람 율법에서 금지한 돼지를 처단함으로써 기독교의 오해를 바로잡는다.

그 후로 지상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으며 평범한 인간이자 무슬림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다. , 평범한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 죽는 모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보아라, 나는 너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신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것을 온 천하에 증명하는 최종적인 행위가 바로 그의 '죽음'이다..

 

지상에서 사명을 다한 예수님은 자연사하게 되며, 무슬림들은 대예언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이슬람식 장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성원(Prophet's Mosque)에는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재림한 예수님이 죽으면 묻힐 빈 무덤이 지금도 자리를 비워둔 채 준비되어 있다.

 

예수님이 무함마드 곁에 묻힌 후, 비로소 세상은 완전히 종말을 맞이하고 모든 인류가 부활하여 알라의 최종 심판을 받게 된다.

 

꾸란에 나오는 성경 속의 인물들

 

아담(아담):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의 예언자이다. 흙으로 빚어졌고 유혹에 빠져 낙원에서 쫓겨나지만, 성경과 달리 곧바로 알라에게 회개하여 용서받았다. 따라서 이슬람에는 인류 전체가 이어받는 '원죄(Original Sin)' 개념이 없다.

 

에녹(이드리스): 높은 지위로 들어 올려진 신실하고 인내심 있는 예언자로 짧게 묘사된다.

 

노아(누흐):년 동안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짓고 유일신을 전파한 굳건한 의지의 사도이다.

 

에벨(후드) / 셀라(Salih): 성경에서는 족보에만 짧게 나오거나 외경에 등장하지만, 꾸란에서는 각각 '아드' 부족과 '사무드' 부족에게 파견되어 우상숭배를 경고하다가 기적(바위에서 나온 암낙타 등)을 행한 주요 예언자로 크게 부각된다.

 

(아유브):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원망 없이 인내하여 결국 알라의 자비로 치유와 갑절의 복을 받은 인내의 상징이다.

 

아브라함(이브라힘): 이슬람에서 무함마드 다음으로 중요한 '알라의 친구(하릴룰라)'이자 순수한 유일신 신앙(하니프)의 조상이다 꾸란에는 어느 아들을 바쳤는지 나오지 않지만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믿는다.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의 카바 신전을 재건한 인물로 묘사된다.

 

(루트):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특히 동성애)에 맞서 싸운 의로운 예언자이다. 성경의 근친상간 일화는 꾸란에는 없다.

 

이스마엘(이스마일): 아랍인의 선조이자, 아버지 아브라함의 희생 명령에 순종한 의로운 예언자이다.

 

이삭(이스하크): 아브라함의 의로운 아들이자 예언자로 인정받는다.

 

야곱(야쿠브): 실명할 정도로 아들 요셉을 그리워하면서도 끝까지 알라를 신뢰한 믿음의 귀감으로 묘사된다.

 

요셉 (유수프): 꾸란 제12장 전체가 그의 이야기이다 성경과 흐름은 비슷하며, 보디발의 아내(줄라이하)의 유혹을 완벽하게 이겨낸 결점 없는 예언자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이드로(슈아이브): 모세의 장인. 꾸란에서는 '마디안' 사람들에게 상거래의 공정함과 유일신을 전파한 예언자로 묘사된다.

 

모세(무사): 꾸란에서 가장 많이(136) 언급되는 인물이다. 파라오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율법(타우라)을 받은 위대한 사도이며, 그의 생애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박해받던 시절 큰 위로의 모델이 되었다.

 

아론(하룬): 모세를 도와 대변인 역할을 한 동반자 예언자이다. 성경과 달리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 때 백성들을 필사적으로 말린 의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다윗 (다우드):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이자, 시편(자부르)을 받은 사도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면 산과 새들이 함께 노래했다고 묘사되며, 성경의 밧세바 간음 사건 같은 도덕적 오점은 전혀 없다.

 

솔로몬 (술라이만): 바람을 다스리고, 동물 및 진(Jinn, 영적 존재)들과 대화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알라에게 받은 지혜로운 왕이자 예언자이다. 시바 여왕을 유일신 신앙으로 귀의시킨 일화가 강조된다.

 

엘리야(일야스): 바알 우상숭배에 맞서 백성들을 책망한 신실한 예언자이다.

 

엘리사(알야사): 의로운 자들 중 한 명으로 짧게 언급된다.

 

요나(유누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구원받은 예언자이다. 그의 경고를 듣고 니느웨 백성 전체가 회개하여 파멸을 피한 유일한 성공적 사례로 칭송받는다.

 

에스겔(둘키플): 인내하고 선을 행하여 알라의 자비를 입은 예언자로 간략히 언급된다.

 

스가랴(자카리야): 세례요한의 아버지. 늙은 나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아들 탄생의 계시를 받은 의로운 제사장이자 예언자이다.

 

세례 요한(야햐): 어려서부터 지혜를 받았고, 예수님(이사)의 등장을 예비하며 의롭고 순결하게 살다 순교한 예언자이다.

 

동정녀 마리아(마리암): 꾸란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된 여성이며, 19장의 제목이 '마리암 장'일 정도로 극진한 존경을 받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순결하고 선택받은 여성으로 묘사된다.

 

꾸란이 성경과 유사한 이유

 

당시 메카는 고립된 사막이 아니라, 거대한 문명들이 교차하는 무역 허브였다. 주변은 이미 기독교와 유대교 세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라비아 북쪽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부족(가산 왕국)이 있었고, 남쪽 예멘 지역은 기독교 국가인 악숨 왕국(에티오피아)의 지배를 받으며 거대한 성당이 지어지기도 했다.

 

메카에서 멀지 않은 메디나(당시 이름은 야스리브)에는 이미 수많은 유대인 부족들이 대를 이어 살며 농경과 상업을 독점하고 있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이 니케아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 등을 통해 '정통 교리'를 확립하면서, 여기서 이단으로 몰린 네스토리우스파, 단성론파, 영지주의적 기독교 종파들이 박해를 피해 규제가 없는 아라비아반도 내륙 사막으로 대거 도망쳐 들어왔다.

 

무함마드는 청년 시절 숙부를 따라, 그리고 이후 아내 하디자의 무역상을 다루며 시리아 등 기독교 문화권인 레반트 지역을 정기적으로 왕복했다.

 

이슬람 초기 기록에도 나오는 '바히라'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9세 혹은 12세 때, 시리아로 가던 중 사막의 한 오아시스에서 '바히라'라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수도자를 만난다. 바히라는 무함마드의 등 뒤에 있는 점을 보고 "이 아이가 장차 위대한 예언자가 될 징조"라고 예언했다는 전승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함마드는 무역 거상들과 수도자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구약의 족장 이야기와 신약의 예수님 이야기를 귀로 들으며 흡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첫 계시를 받고 정신적 충격에 빠졌을 때, 아내 하디자가 그를 데리고 찾아간 인물이 있다. 바로 하디자의 사촌 형제인 와라까이다. 와라까는 당시 메카에서 보기 드물게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아랍어로 번역할 수 있었던 기독교 학자(유대인으로 추정)였다. 와라까는 무함마드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과거 모세에게 임했던 신성한 법(나무스)"이라며 무함마드가 예언자가 되었음을 확증해 준 인물이다. , 무함마드의 가장 가까운 처가 식구 중에 성경에 해박한 기독교 지식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꾸란을 보면 성경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성경의 텍스트와 완벽히 일치하지 않고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경 정경이 아닌 당시 사막에 퍼져 있던 '기독교 외경(Apocrypha)'이나 '유대교 랍비들의 전승(미드라시)'의 내용과는 일치한다.

 

예를 들어 아기 예수님이 요람에서 말을 하고, 진흙으로 새를 빚어 숨을 불어넣자 진짜 새가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성경에는 없다. 하지만 꾸란에는 등장하고 아울러 2세기경 기독교 외경인 <도마 복음서(Infancy Gospel of Thomas)>에 정확히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동정녀 마리아가 광야의 대추야자나무 아래서 신음할 때 발밑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이야기는 꾸란과 기독교 외경인 <위 마태복음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방대한 성경 이야기를 알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알라가 천사를 통해 직접 내려준 계시라는 증거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학적으로 보면 6~7세기 아라비아반도에 구전으로 떠돌던 기독교 정경, 외경, 유대교 전승들이 영리하고 사색적이었던 무함마드의 기억 속에 융합되어 있었고, 그가 동굴에서의 종교적 체험을 거치며 아랍인들의 정서에 맞게 '유일신 사상'으로 재정리하여 읊조린 것일 확률이 높다.

 

공식 꾸란의 탄생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는 꾸란이 한 권의 ''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수시로 계시를 받으면, 제자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암기했다. 당시에는 종이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글을 아는 제자들은 주변에 있는 재료에 닥치는 대로 기록해 두었다. 따라서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단 한 권의 표준 단행본'은 없었다.

 

무함마드가 서기 632년에 사망한 직후, 위기가 찾아왔다. 가짜 예언자들이 가담한 부족 반란(리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중 '야마마 전투'에서 꾸란을 통째로 외우고 있던 핵심 암기자(하피즈)들이 70명 넘게 전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위기감을 느낀이인자 오마르(훗날 2대 칼리파)가 초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를 설득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수석 비서관이었던 자이드 이븐 사비트를 총책임자로 임명해, 흩어진 기록들을 모으게 했다.

 

살아남은 암기자 두 명 이상의 교차 검증을 거쳐 최초로 한 곳에 묶은 원고(수후프)를 완성했다. 이 원고는 가죽 끈으로 묶인 형태였으며, 보관용으로 보관되었다.

 

그 후, 이슬람 제국이 영토를 넓혀 시리아, 이라크, 페르시아까지 영토를 확장하자 문제가 생겼다. 각 지역의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아랍어 방언과 억양으로 꾸란을 읽기 시작하면서, 지역마다 꾸란의 발음과 뜻이 달라져 심각한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제3대 칼리파 우스만(Uthman)은 결단을 내렸다. 무함마드의 비서였던 자이드 이븐 사비트를 다시 불러, 1대 칼리파 때 모아둔 원본을 바탕으로 무함마드가 쓰던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 방언'을 기준으로 표준 정경을 일체화하게 했다.

 

서기 650년경 완성된 표준 꾸란을 여러 권 복사하여 이슬람 제국의 주요 대도시(메카, 다마스쿠스, 바스라, 쿠파 등)로 보냈다. 표준 꾸란과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기타 모든 이본과 파편 기록들을 전부 회수하여 불태워버렸다.

 

이슬람의 성경에 대한 판단

 

이슬람은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예수님에게 내려진 계시를 신성한 것으로 인정한다. 꾸란에서는 다음 4개의 책을 '하늘에서 내려온 경전'으로 명시한다.

 

타우라: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자부르: 다윗의 시편

인질: 예수님의 복음서 (현재의4 복음서와는 개념이 다르다)

꾸란: 무함마드에게 내린 최종 계시

 

그러나 치명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슬람은 현재 인류가 가진 구약과 신약 성경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에 의해 변질, 왜곡, 누락되었다고 주장(타하리프)한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 중 꾸란과 일치하는 부분만 진짜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고, 일치하지 않는 부분(: 예수님의 신성, 십자가 대속 및 부활)은 인간이 변개한 오류로 여긴다.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은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뉜다. 이 두 종파 분열은 신학적 교리 논쟁이 아니라, 무함마드 사후 "누가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칼리파)가 될 것인가?"라는 정치적 후계 구도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서기 632년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명시하지 않고 급사하자, 무슬림 공동체(움마)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무함마드는 자연사가 아니라 독살 의혹이 있는 병사(독이 든 양고기를 먹은 후 수년 뒤 사망)라는 주장이 있다.

 

대부분은 무함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시 부족의 원로들 중에서 공동체의 합의(이즈마)와 선거를 통해 가장 덕망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아부 바크르, 오마르, 우스만이 차례로 1, 2, 3대 칼리파가 되었다. 관행(순나)을 따르는 정통파라는 뜻을 지닌 다수파인 수니파이다.

 

반면, 일부 소수는 신성한 영적 혈통을 중시했다. 오직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파티마의 남편) '알리(Ali)'와 그 혈통만이 합법적인 지도자(이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시아트 알리'로 불렸고, 이것이 '시아파'의 어원이 되었다.

 

결국 알리가 제4대 칼리파가 되었으나 내전 끝에 암살당했고, 뒤이어 우마이야 가문이 칼리파 자리를 찬탈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서기 680, 알리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친손자인 후세인(Husayn)이 카르발라 전투에서 수니파 왕조 군대에 잔혹하게 학살당하면서 두 종파는 강을 건너게 되었고, 정치적 갈등이 신학적 갈등으로 고착화되었다.

 

현재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의 약 85%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맹주로 하여 이집트, 터키, 그리고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등 이슬람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 넓게 퍼져 있다. 칼리파는 공동체의 정치적 군사적 인간 지도자로 분류된다. 과격 단체로 알카에다, ISIS가 있다.

 

현재 시아파는 전체 무슬림의 약 15%로 페르시아 문명권인 이란이 거대한 맹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웃 나라인 이라크,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바레인 등 일부 국가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도자인 이맘은 무함마드의 혈통으로, 오류가 없으며 영적, 정치적 권위를 가진다. 과격 단체로 헤즈볼라(레바논), 후티 반군(예멘)이 있다.

 

결론 이슬람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슬람은 유사 기독교, 즉 이단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보다는 더 성경의 정통성에서 벗어나 있지만, 아예 성경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단 중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는 이단으로 분류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 분류는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 흰두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로 분류되어 있다. 물론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기준과 문화의 개념까지 생각해 보면 다른 종교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조금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는 아류 기독교 또는 이단 기독교로 분류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그냥 평범한 선지자로 분류하는 유대교보다는 기독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이슬람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반증 가능한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부활이라는 사건이 역사적 검증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제법 공부를 많이 해서 쓴 글이라서 생각보다 긴 글이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사실이 무엇인지를 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권 선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