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
모든 ‘결정’을 단순하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굳이 나눠보자면 다음의 7가지 층위로 구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A1: 나에게 유익한가?
A2: 나에게도 유익하고 상대방에게도 유익한가?
A3: 나에게는 손해지만, 상대방에게는 유익한가?
B1: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 유익한가?
B2: 내가 속한 공동체에는 유익하고, 관련 공동체에게도 유익한가?
B3: 내가 속한 공동체에는 손해지만, 관련 공동체에는 유익한가?
C: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아쉽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나(공동체)에게 유익한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몸은 생존과 직결된 ‘나에게 유익한가’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이에 반해 ‘상대방(관련 공동체)에게 유익한가?’를 묻는 것은 이타적인 생각이지만, 이 역시 공정함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사면 나에게도 유익이지만,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도 유익하다. 문제는 상대방에게는 유익하지만 나에게는 유익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발생할 때이다. 그래서 상호 이익을 위한 결정은 쉽지만, 나(공동체)의 손해를 감수하기는 어렵다. ‘옳은 결정’이 아니라, 나의 이익이 발생하는 결정을 ‘좋은 결정’이라고 착각하며 판단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거듭남’의 증거는 모든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을 모시느냐, 아니냐”의 싸움이 된다.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유익한가?”, 더 정확히는 “하나님이 좋아하실까?”를 묻는 층위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당장 내가 이익을 얻든 손해를 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은 모든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 결정은 눈앞의 ‘나의 손해’로 귀결되곤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오래간만에 불신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제법 잘산다. 반면에 나는 요즘 재정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 내 형편을 눈치챈 친구가 밥을 사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한사코 내가 사겠다고 고집을 부려 굳이 계산을 해버린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나누며 하나님 이야기를 꺼낸다. 친구는 잠자코 듣는다. 아마도 내가 밥을 사지 않았다면 친구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말을 잘랐을지도 모른다. 나의 작은 물질적 손해가 영적인 대화의 문을 연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나이가 들면 체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일까?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면, 누군가의 신세를 안 지거나 덜 지게 된다. 나에게도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유가 생긴다. 문제는 이 여유를 “어디에 이용하는가”이다.
만약 건강해진 노년을 그저 육체적 쾌락이나 정서적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만 쓴다면,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의 산악회 모임에서 수많은 불륜이 발생한다는 서글픈 현실은, 하나님을 인지하지 않는 이기적인 선택이 인간의 본성임을 날것 그대로 말해준다.
반대로 그 여유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노숙자 섬김과 같은 일에 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은 나를 위한 것이면서도 상대방을 위한 것이 되는 동시에,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행동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결정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하나님’을 떠올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실수를 피해 가는 진짜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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