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 여행 가이드

Asia/China(10)

중국#08 - 고구려의 위대함을 보여준 광개토대왕비

캐나다제이슨 2010. 9. 13. 07:58

여행의 둘째날은 고구려의 옛 수도인 국내성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중국 땅..

덕분에 도시의 이름도 국내성이 아닌 집안(集安)입니다.

참고로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습니다.

 

드라마 "주몽"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는 당시 졸본지역에 있었습니다.

현재 중국명은 환인이며 당시에는 흘승골성이라고 불렸습니다.

보통 오녀산성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연수에는 스케쥴이 없네요.

아마도 남아 있는 흔적이 거의 없어서 일런지도요..

 

그래도 국내성을 방문한다니 가슴이 뛰네요. ^^

 

통화를 빠져나온 버스는 어느 덧 시골로 들어섭니다.

그다지 높은 산은 없고.. 낮은 구릉으로만 형성된 땅..

여기가 바로 만주 벌판입니다.

 

잠시 후.. 휴게소에~

 

여기서도 화장실은.. ^^?

 

다행히도 다소 신식의 화장실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

 

휴식중심..

중국은 저 중심(中心)이라는 말을 너무 잘 쓰는 것 같습니다.

 

다들.. 커피 한잔.. 담배 한 대 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 휴게소의 전체 모습을 찍어봅니다.

 

고구려의 고도 집안..

중국 동북공정의 최종 목표는 바로 북한을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놓아야

북한이 유사시 북한을 무력점령(?)하는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이사람들.. 호수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딱 보아도 인공으로 만든 호수입니다.

 

홍차 하나 얻어먹고.. ^^

 

다시 버스에 오릅니다.

그런데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섭니다.

 

중무장한 공안들이 버스를 세우고 조사를 하네요.

물론 북한 국경과 가까워지는 것도 있겠지만..

단순한 관광객인지 아닌지를 조사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연수가 다물 연수이기 때문에 마치 감시당하는 느낌마저 드네요.

 

그렇게 다시 달리던 버스는 집안 외곽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띈 것은?

 

저 정자는?

 

주변 풍경과 안내판을 거들떠 볼 겨를도 없이 입장권을 끊자마자 빨리 달려가봅니다.

 

호태왕비?

광개토대왕의 정식 명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王)입니다.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마지막 3글자를 따서 호태왕이라고 부릅니다.

 

아.. 광개토대왕비입니다. ㅠㅠ

가슴이 울컥거립니다.

 

앞에 한 팀이 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합니다.

중국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해서 저렇게 유리건물로 대왕비를 보존해놓았는데..

사실은 온실효과때문에 비에는 더욱 악 영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순서대로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진 촬영 금지입니다.

옆에서 공안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봅니다. ㅠㅠ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사진을 시도해봅니다만..

아무리 CPL 필터를 끼워 돌려도 이중 삼중 유리로 되어 있어 소용이 없습니다.

 

90도 돌아봅니다.

이 쪽에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촬영이 가능합니다.

저 빼곡히 적힌 글자들 보이시나요?

 

다시 90도를 돕니다만..

이쪽은 햇빛 각도상 방법이 없네요.

 

다시 90도를 돕니다.

그나마 4방향 중에서 가장 잘 찍힌 것 같습니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은 374년에 태어나 412에 사망하였고 재위 기간은 391년부터 412년까지 21년간입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제작한 것으로..

높이는 6.39m, 너비는 가장 좁은 쪽이 1.35m 가장 긴 쪽이 2.00m로 모두 1,775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은 크게 세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역대왕들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왕실기록이고..

둘째 부분은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만주 정복, 백제 정벌, 신라 구원, 동부여, 숙신)에 대한 내용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세째 부분은 능을 관리하는 수묘인() 연호()의 숫자와 차출방식, 수묘인의 매매금지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석회가 많이 발라져 있는데..

한 때는 일제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서 글자를 조작한 흔적이라고 했지만..

주변의 중국인들이 탁본을 뜨기 위해 비의 단면을 편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위해 발라진 것이라고 설이 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라일본부 설은

□□□ (□는 훼손된 문자)을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 등을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하는 것인데..

정확한 해석은

"왜가 신묘년에 건너왔으므로, 광개토대왕이 바다를 건너가 왜를 깨뜨리고 백제, □□□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장수왕이 아버지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에..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왜가 백제와 신라를 정복했다는 내용을 적을리가 없지요.

 

광개토대왕비를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장 찍어봅니다.

자랑스러운 고구려 역사의 증거..

빨리 이 땅이 우리 땅이 되어서 우리 손으로 저 비를 관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 그럼 이제 광개토대왕릉으로 가볼까요?

 

글/사진 : 제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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