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을 떠난 버스는 잘도 달립니다.
곧 도착한다는데.. 중국에서 "곧"은 30분 정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
어쨌든 이번 연수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는..
바로 청나라의 첫 수도인 심양(瀋陽)의 고궁입니다.
당시 만주의 중심지였던 심양..
지금도 심양은 중국 동북 3성인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중국에서 5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이런 심양에 위치한 고궁은.. 중국에 현존하는 2개의 "궁"중에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북경에 있는 자금성입니다.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심양고궁은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奴兒哈赤]와 2대 황제 태종(太宗)이 건립한 궁으로 1625년에 착공하여 1636년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면적은 약 6만㎡이며, 72만㎡인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12배 이상이나 규모가 작다고 합니다.
청나라 3대 황제인 성종(成宗) 때 북경[北京]으로 천도한 뒤로는 황제가 동북[東北] 지역을 순회할 때 머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고하네요.
1955년에 선양고궁박물관[瀋陽故宮博物館]이 되었고,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궁전 내부는 크게 동로(東路)·중로(中路)·서로(西路)로 나뉘며, 모두 90채의 건물과 20개의 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심양 고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들 많네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주로 한국 관광객과 일본 관광객이 주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중국 관광객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제는 중국사람들이 관광을 다닐 정도로 부유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기사 5%가 부유층이라고하는데.. 7,000만명이네요. --;
심양고궁의 정문인 대청문(大淸門)
생각보다 초라합니다만.. ^^
대청문 앞의 이 동물은 뭘까요?
사자라고 합니다만..
심양고궁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가운데(중로)가 정치를 논하는 곳이고 우측(동로)은 군사 지역.. 좌측(서로)은 주거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특징은.. 주거지역의 위치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각 나라마다 특징이 있지만 청나라는 황제가 주거하는 곳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네요.
안내도를 보시면.. 더 이해가 쉽습니다.
좌측이 주거지역.. 가운데가 정치지역.. 우측이 군사지역입니다.
크기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하기사 자금성의 1/12 수준이라고 하네요.
선양고궁의 정문인 대청문(大淸門)을 지나 중로로 들어서 숭정전(崇政殿)까지 왔습니다.
중로에는 봉황루(鳳凰樓), 청녕궁(淸寧宮), 동소(東所), 서소(西所), 태묘(太廟) 등이 있다는데.. 건물들이 다 비슷해서.. --;
사진 찍으라고 청나라 의상을 빌려주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 속의 두 처자는 아무래도 중국처자들이겠지요?
물론 돈 받고 빌려줍니다~
숭정전의 모습을 자세히 봅니다.
분명.. 한족의 궁궐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정교함은 다소 떨어지는 듯 하지만..
무엇인가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유목민족의 느낌이 듭니다.
기와 위로 자라나고 있는 풀들..
중국에서는 저 풀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거하면 "기"를 죽인다고 하네요. --;
가까이 가서 봅니다.
명광대정(明光大正)이란 현판이 뚜럿하게 걸려있습니다..
광명정대하게 행정을 하라는 뜻..
옥좌의 모습..
4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잘 보존되었네요.
구석구석 찍어봅니다.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묻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보존상태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옆은 벽돌?
최근에 개보수 한 것일까요?
자.. 이제 우측 군사 지역인 동로로 넘어갑니다.
황제와 신하들이 정사를 논하던 대정전(大政殿)
대정전 앞에 좌우로 각각 5개의 십왕정(十王亭)이라 부르는 정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청의 팔기군이 출정식을 하는 곳입니다.
대정전 앞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여기에도 역시 옥좌가..
세월의 풍파는 여기저기에서 그 흔적을 드러내지만..
이 곳에서.. 삼학사(윤집, 홍익한, 오달제)가 죽임을 당했겠지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도..
제대로 부국강병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 채.. 두번의 호란을 겪고 치욕을 겪었어야만 했던 슬픈 우리 역사..
실리에 밝고 개혁을 추진하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내세워 유교의 이념을 끝까지 고집하던 조선은.. 결국 쇠약의 길로 걷게 됩니다.
잠시 그 날의 씁쓸함을 뒤로 한채..
왼쪽(서로)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 멀리 높은 곳에 위치한 건물들이 주거지역입니다.
계단을 통해 올라야만 주거지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굴뚝~
전부.. 벽돌인 것을 보니.. 옛날부터 벽돌을 썼었나 봅니다.
여기는 황제와 황비가 머무는 곳..
무슨 뜻인지 해석이 어렵군요.
후궁들은 요렇게 간단한 곳에서.. ㅎㅎ
까마귀 먹이 주는 곳..
청나라는 까마귀를 신성시 여겨서 솟대에 까마귀 먹이통을 매달아 까마귀들을 먹였다고 합니다.
슬슬.. 퇴청을 해야할 때입니다.
분명히.. 우리나라와도 다르고..
중국 한족의 전통 궁궐과도 다른 만주족의 궁궐..
여기에도 이렇게 옷 빌려주는 곳이 있네요.
날씨는 꽤 뜨겁습니다만..
북쪽이라서 그런지.. 습도는 덜합니다.
그래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쉬원하네요.
버스로 돌아가는 길..
다시한번 우리가 왜 호란을 당했을까 되새겨 봅니다.
명나라와 후금(후에 청나라)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벌이던 광해군을 쫓아내고..
유교 사대주의.. 중화의 나라인 그러나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져가고 있는 명을 섬기기 위해서 친명배금을 내세우며 인조를 옹립한 결과..
정묘호란(1627년 인조 5년)을 당하고..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명을 돕다가.. 결국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년)을 당하는..
믿었던 명의 원군은 오지 않고 인조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敲頭禮,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것)의 치욕을 당합니다.
결국 조선이라는 배후를 무력화시킨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변경하고 북경의 자금성을 점령 명을 멸망시키고 맙니다.(1644년)
이 문은 군사지역인 동로의 대문입니다.
관광지라서 상점들은 즐비하고..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네.. 소방서랍니다. ^^
저 아저씨.. 제가 고궁입장할 때도 저렇게 부동자세였는데.. 아직까지 부동자세를 하고 계시네요.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덕분에 서양이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된 소현세자라도 왕위에 올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청에서 돌아온 지 2달만에 의문의 죽음.. 참 역사는 슬프기만 합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가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되어 일본의 침략도 없었고 남북이 분단되는 그런 슬픈 역사도 없지 않았을까요?
글/사진 : 제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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