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의 캐나다 여행 가이드

Asia/China(10)

중국#23 - 조국을 생각하게 만든 청산리 대첩의 현장

캐나다제이슨 2010. 11. 19. 06:44

백두산을 떠난 버스는 연변자치주를 향해서 달립니다.

 

연변지차주는 백두산 동쪽 두만강 북쪽에 위치하지만..

백두산에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창산리 대첩 현장을 들린다고 하네요~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청산리대첩.. 그 이름만 들어도 통쾌합니다. ^^

 

개인적으로 일본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일본의 국군주의는 너무나 싫어하기에~

그런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네요? ^^?

 

연변으로 가는 길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좁은 국도가 많고 산길도 더러 나타납니다.

 

그렇게 몇 시간.. 잠시 쉬라네요

 

중국의 휴게소~

 

중국의 화장실.. 그 안은 상상하신대로. ㅎㅎ

 

국도변에는 금계국이 자연스럽게 피어 있고..

 

북쪽이라서 그런지 8월인데도 벌써 코스모스가 피어 있습니다.

 

휴게소 안에는.. 인삼 상품이 많습니다.

백두산 주변은 산삼도 많이 발견되고 장뇌삼도 많이 기른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관광객을 위한 각종 지역 특산 건강(?) 식품들이 많습니다.

 

장뇌삼..

그만 모이라는 소리에 급하게 찍다보니.. 많이 흔들려버렸습니다. --;

 

모이라는 이유는?

드디어 청산리 전투의 현장으로 간다고 합니다.

 

오.. 드디어 가는구나.. 기대 만빵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갑자기 앉으라고 하네요.

설마?

네.. 여기가 바로 청산리 전투의 현장이라고 합니다~ --;

청산리 전투는 청산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현재 연변자치주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의 이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청산리 전투의 현장 중 하나인 셈입니다.

 

우리의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는 깁니다.

 

한일 강제합방 후 만주지역에 대한독립군이 결성되어 총 사령관으로 박상진장군이 임명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18년 일본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상진 장군은 낙향을 하여 그 곳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고 맙니다.

갑자기 지휘관을 잃은 대한독립군은 다시 정열을 정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실제로 대한 독립군의 첫 전투는 1920년 6월 4일에 있었던 삼둔자 전투입니다.

잘 알려진 홍범도 장군과 당시 연변지역의 자치군 역할을 하던 자경단장 최진동 장군 두 분의 세력이 합쳐

두만강 중류의 삼둔자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희함동 전투, 강안리 전투 그리고 유명한 봉오동 전투에 이어지기까지 우리의 무장 독립투쟁은 지속됩니다.

 

이렇게 만주지역에서의 대한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전개되자

1920년 10월 일제는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소탕하기에 이르렀고..

이 때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김좌진 장군등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일본군 3,300명을 사살하는 대첩을 이룬 전투가 바로 청산리 전투입니다.

 

청산리 전투에 대한 주장은 여러가지로 나뉘는데..

김좌진/이범석(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두분이 지휘관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김좌진/홍범도/최진동 이 세분이 지휘관이었다는 주장도 있읍니다.

이는 마지막 전투가 10월 26일 홍범도장군이 활약한 고동하 전투였기 때문에 범위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즉 청산리 전투는 단 한번의 전투가 아닌.. 일주일간 광범위한 범위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편의상 청산리 전투라고 부르는 것은 이 7일간의 전투의 서막이 청산리에서 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승리..

그러나 이 승리로 인해 일제는 만주지역에 있던 우리 동포들에 대한 지독한 탄압을 시작하게 되고..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렵게 된 우리 독립군은 이후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러시아 지역으로 그 활동 무대를 옮겼다가 무장해제당하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이후 대한광복군으로 재탄성한 우리의 독립군은..

1945년 9월 대대적인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고 준비하였으나..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 손으로 직접 광복의 기쁨을 맞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아마..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탄만 떨어지지 않았어도 ㅠㅠ

 

청산리대첩비는 2001년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화룡현 청산촌에 건립이 되었다고 하는데..

코스에는 없어서 들리지는 못했습니다.

 

연수니까.. 중간중간 강의를 듣는 것은 당연하고도 고맙습니다. ^^

 

맛있니?

 

아무런 흔적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 곳은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현장..

연변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조국을 생각해봅니다.

 

이 만주 땅..

 

하루 빨리 평화통일이 되고 고토의 회복도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사는 동포들도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와 같이 대한민국으로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 제이슨